냥념꽃개장
화장실의 역사로 보는 사라진 직업 - 똥거름장수 본문
뒷간
집 뒷쪽에 가려두던 곳, 살림채에 붙어 있지 않고 뒷마당에 별채 형태로 따로 떨어져 만든 화장실
인간이 일생 동안 1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사색과 독서의 공간으로 깨우침과 휴식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쉽게 언급하기조타 꺼리며 집 앞 쪽이 아닌 뒤쪽에 가려두었던 곳, 그 곳이 뒷간이다.
화장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다.
예로부터 세계 각 지역에서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방법과 형태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오랜 옛날에는 토기나 돌로 만든 흙탕 위에 앉아서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변화가생겨났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대부분 좌변기이다. 이러한 변화는 19세기후반부터 이루어졌으며,
이전에는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더욱 혁신적인 기술이 화장실에 도입되어 자동으로 세정되는 변기 뿐만 아니라 타원형변기, 맞춤형 물조절 등
스마트화장실 사용의 편리성과 청결함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백제의 화장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똥과 오줌을 따로 모을 필요가 생겨났고, 인류의 배설물이 농작물 성장에 필요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구덩이를 파거나 항아리를 묻고 그 것들을 모았다.
배설물은 모아둔 곳에서 숙성되어 거름이 되고, 인간은 거름을 퍼내어 농토 등에 뿌렸다.
세계 곳곳에서 볼수 있는 재래식 화장실의 역사는 농업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거름을 만드는 공간에서 불쾌한 냄새와 청결상의 문제가 나타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로 변을 빠르게 처리하는 수세식 화장실이 나타났다.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천년 경 인더스, 수메르 문명권에서
배설물을 떠내려 보내는 장치가 있는 화장실이 나타났다.
또, 휴대용 변기도 등장했다. 수레나 가마를 타고 이동할 때, 또는 밤에 화장실을 이용할 때(집 밖에 있으므로),
밖에서 급하게 용변을 보고자 할때 필요했던 것이 휴대용 변기였다.(요강이라고도 한다.)
- 어릴 적 우리집에도 있었던 요강은 스텐으로 되어있고, 뚜껑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아침에 어머니가 비우는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30대 무왕이 익산지역에 세운 별궁으로 추정 되는 곳으로,
위의 사진은 왕궁리 유적 발굴 당시 뒷간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1.5~3미터 가량 깊이의 구덩이에 담긴 분유가 대형 배수로를 거쳐 궁 외부로 빠져나가도록 설계 되었다.
똥거름 장수의 등장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권에서 화장실을 관리하는 일꾼이 있었다.
이들은 우물 위에 설치된 화장실을 청소하고 유지 보수를 담당했다.
"똥거름장수"라고도 불리는 이 직업은 각 집의 뒷간을 쳐내서 그 배설물을 거름으로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의 똥장군은 옹기로 만든 항아리로 수거해갔다.
옹기 똥장군은 진흙으로 빚었서 똥물이나 악취가 새어나가지 않지만,
그 무게가 상당해 똥장곤을 짊어지고 밭까지 운반해 버리기까지 엄청난 무게를 이겨야 했다.
조선후기까지 서울의 분뇨는 민간 '똥장수'가 무상 수거해 도성 안팎의 농민에게
거름으로 판매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한제국 초대 통감 이토히로부미의 제안으로 1907년 말
설립된 한성위생회(위생회)가 수거권을 빼앗아갔다.(서호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20세기 초반까지도 존재했던 엄연한 직업의 하나였다. 1910년대에는 똥과 재를 섞은 똥재가 1섬에 10~30전에 팔렸다.
한양에 살던 사람들은 똥장수에게 돈을 받고 똥을 팔았으나, 1935년부터는 배설물을 처리하는 비용을 따로 지급했다.
수원에는 똥박물관 "해우재"가 있다고 하니 시간내서 아이들과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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